불장(佛將)(제5화:정권(政權)만 다를뿐 우리는 동족(同族)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석가모니 작성일2013.07.22 조회7,538회 댓글1건본문
만주족 기인(旗人)들은 서산대사와 조선의 선맥(禪脈)들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썼다. 자신들이 세운 청왕조가 요동에 자리한 이상
한반도의 조선과 중원의 명왕조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이상 청왕조가 불교국가임을 적극 내세워 한반도 조선국의
불교계의 반발을 잠재우고 정권만 다른 동족(同族)의 국가임을
적극 주장하였다.
즉 청왕조와 조선국의 전쟁은 정권(政權)과 정권(政權)의 대결인 것이었다.
그런면에서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었다.
요동을 중심으로 만주는 광대한 땅과 곡창지대 그리고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고 유라시아 대륙의 실크로드와 그 땅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주족을 중심으로 한 팔기병의 주요 전략과 전술은 포병과 기병의
조화속에 산악 매복전술인 반면 조선은 주로 보병이었다.
그리고 이씨 조선왕조가 유교국가임을 내세운것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최영장군이 내세운 요동정벌을 좌절시키고 위화도 회군을 함으로써 불교국가
명나라에 한족의 공자가 내세운 중원 중심 천하관의 유교의 사대주의를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선의 불교계는 청나라와 조선과의 전쟁에 있어 중립을 지켰다.
이로써 조선은 청나라에 굴복하고 청나라의 신하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불교국가 청나라는 배후의 조선을 억제하고 유교의 대동주의의
이자성과 산해관에서 오삼계와 함께 연합해 이자성을 격파함으로써
만몽한(滿蒙漢)연립정권의 발판을 만듬으로써 또 다른 불교국가 대청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각별히 신경을 썼다. 자신들이 세운 청왕조가 요동에 자리한 이상
한반도의 조선과 중원의 명왕조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이상 청왕조가 불교국가임을 적극 내세워 한반도 조선국의
불교계의 반발을 잠재우고 정권만 다른 동족(同族)의 국가임을
적극 주장하였다.
즉 청왕조와 조선국의 전쟁은 정권(政權)과 정권(政權)의 대결인 것이었다.
그런면에서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었다.
요동을 중심으로 만주는 광대한 땅과 곡창지대 그리고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고 유라시아 대륙의 실크로드와 그 땅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주족을 중심으로 한 팔기병의 주요 전략과 전술은 포병과 기병의
조화속에 산악 매복전술인 반면 조선은 주로 보병이었다.
그리고 이씨 조선왕조가 유교국가임을 내세운것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최영장군이 내세운 요동정벌을 좌절시키고 위화도 회군을 함으로써 불교국가
명나라에 한족의 공자가 내세운 중원 중심 천하관의 유교의 사대주의를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선의 불교계는 청나라와 조선과의 전쟁에 있어 중립을 지켰다.
이로써 조선은 청나라에 굴복하고 청나라의 신하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불교국가 청나라는 배후의 조선을 억제하고 유교의 대동주의의
이자성과 산해관에서 오삼계와 함께 연합해 이자성을 격파함으로써
만몽한(滿蒙漢)연립정권의 발판을 만듬으로써 또 다른 불교국가 대청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댓글목록
석가모니님의 댓글
석가모니 작성일이로써 사대주의 나라 조선에서는 안동김씨의 100년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