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花郞) 1만리(용감한 전략, 전술가 아구다와 금(金)왕조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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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가모니 작성일2013.06.27 조회8,695회 댓글1건본문
요나라는 중국의 북방전체와 만주의 서쪽을 차지한 거대한
국가였다. 그런 대제국을 상대로 완안부 어느 누구도 전쟁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제국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에
이르러 천조제는 온갖 사치스럽고 문란한 정치로 완안부를
수탈하기 시작했다.
곡식, 수렵 사냥동물, 완안부족민이 수렵 사냥에 필수품인 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모든 물품을 수탈하고 있었고 중원 북방의 대륙
에서도 한족으로부터도 수탈하는 포악한 정치가 그지 없었다.
완안부의 남쪽은 윤관의 동북 9성 전쟁 이후 고려의 북침이 저지되었
지만 서쪽은 강대한 요제국을 상대하기에 벅찼고 요나라는 완안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더욱 완안부를 압박하였다.
그때 아구다는 요제국의 천조제의 수탈정치로 인해서 완안부 전체가
요나라에 대해 적개심을 갖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완안부의 민심(民心)은 돌아섰고 아구다는 요나라에 대해
전쟁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왕조정치 체제에 있어서 종주(宗主)인
왕족(王族)이 죽으면 그 왕조국가는 멸망한다. 그리고 요나라의
천조제는 그 자신이 사치스럽고 문란한 정치를 일삼음에 따라 거란족
군대와 정치귀족들마저 천조제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요나라의 10만 대병이 완안부의 1만대군을 진압하러 왔을때 완안부의
장수 대부분이 전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나라의 10만 대병에
숫자적으로 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감한 전략가인 아구다의
생각은 달랐다. 요나라의 황제 천조제가 있는 본진(本陣)만 1만 완안부
군대가 강하게 충격 돌파 공격하면 나머지 10만 요나라 대병은 자연스럽게
흩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완안부의 장수들에게
작전술로 펼쳐 놓았다.
역시 요나라 군대 10만대병의 마음은 천조제로부터 떠나 있었다.
천조제는 가혹한 사치와 문란 그리고 폭압과 수탈의 정치황제였기 때문이다.
완안부의 아구다를 중심으로 1만의 군대는 천조제의 본진에 돌입하였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자 요나라 10만 대병은 자연스럽게 흩어졌고
천조제는 도망쳤다.
완안부는 용감한 전략 전술가 아구다의 작전술에 의해 요나라를 꺽고
요동과 요서를 차지하고 수도를 요양으로 옮겼다.
이로써 용감한 전략, 전술가 아구다는 요양에서 금왕조(金王祖)를 선포하고
금왕조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금나라의 군대는 밀려난 요나라 군대의
다음 방어진 연운16주를 노렸다.
국가였다. 그런 대제국을 상대로 완안부 어느 누구도 전쟁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요제국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에
이르러 천조제는 온갖 사치스럽고 문란한 정치로 완안부를
수탈하기 시작했다.
곡식, 수렵 사냥동물, 완안부족민이 수렵 사냥에 필수품인 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모든 물품을 수탈하고 있었고 중원 북방의 대륙
에서도 한족으로부터도 수탈하는 포악한 정치가 그지 없었다.
완안부의 남쪽은 윤관의 동북 9성 전쟁 이후 고려의 북침이 저지되었
지만 서쪽은 강대한 요제국을 상대하기에 벅찼고 요나라는 완안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더욱 완안부를 압박하였다.
그때 아구다는 요제국의 천조제의 수탈정치로 인해서 완안부 전체가
요나라에 대해 적개심을 갖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완안부의 민심(民心)은 돌아섰고 아구다는 요나라에 대해
전쟁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왕조정치 체제에 있어서 종주(宗主)인
왕족(王族)이 죽으면 그 왕조국가는 멸망한다. 그리고 요나라의
천조제는 그 자신이 사치스럽고 문란한 정치를 일삼음에 따라 거란족
군대와 정치귀족들마저 천조제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요나라의 10만 대병이 완안부의 1만대군을 진압하러 왔을때 완안부의
장수 대부분이 전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나라의 10만 대병에
숫자적으로 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감한 전략가인 아구다의
생각은 달랐다. 요나라의 황제 천조제가 있는 본진(本陣)만 1만 완안부
군대가 강하게 충격 돌파 공격하면 나머지 10만 요나라 대병은 자연스럽게
흩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완안부의 장수들에게
작전술로 펼쳐 놓았다.
역시 요나라 군대 10만대병의 마음은 천조제로부터 떠나 있었다.
천조제는 가혹한 사치와 문란 그리고 폭압과 수탈의 정치황제였기 때문이다.
완안부의 아구다를 중심으로 1만의 군대는 천조제의 본진에 돌입하였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자 요나라 10만 대병은 자연스럽게 흩어졌고
천조제는 도망쳤다.
완안부는 용감한 전략 전술가 아구다의 작전술에 의해 요나라를 꺽고
요동과 요서를 차지하고 수도를 요양으로 옮겼다.
이로써 용감한 전략, 전술가 아구다는 요양에서 금왕조(金王祖)를 선포하고
금왕조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금나라의 군대는 밀려난 요나라 군대의
다음 방어진 연운16주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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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님의 댓글
석가모니 작성일The brave man king of the AGU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