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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불교를 믿은 몽골유목민은 어떻게 팽창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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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가모니 작성일2013.07.02 조회8,0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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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유목민족의 조상은 흉노,선비,돌궐,거란등으로 지칭되다가
10세기경 거란족이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몽골이 춥고 척박한 중원
북방대륙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몽골이 통일되지 않고
타타르부, 오이라트부, 몽골부등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몽골족은 대대로 유목민족이어서 재산상, 권력상 상속의
원칙이 농경민족과 같이 장자상속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다만
아버지가 자식을 낳으면 큰아들부터 장성하면 적당한 양의 말과 소,
그리고 양떼를 주어 목초지를 찾아 분가시켰고 부모는 마지막 자식이
모시는 것이 유목민족들의 생활풍속이었다.각 몽골부족(部族)의
왕가(王家)인 칸 역시 실세적 권력자를 선출하는 쿠릴타이를 통해서
선출하였다. 하지만 흔히 농경민족인 중화민족이나 한반도의
조선족이나 서양의 유럽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결코 몽골유목민을
통일시킨 칭기즈칸은 전투를 지휘하는 전쟁군주가 아니었다.
오직 칭기즈칸이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면 칭기즈칸이 자신의 부인 보르테를
찾기 위해 벌인 전투와 몽골족의 통일을 위해 벌인 자무카와의 전투가 전부다.
그리곤 사실상 칭기즈칸은 춥고 추운 척박한 몽골고원의 몽골족의 수도
상도에서 거의 한번도 나오지 않은채 유목민의 통신수단인 역참제를 통해
몽골족의 정복전쟁 지휘를 했다. 즉 장성한 자식(왕자)부터 자신의 부족의
말, 소, 양떼를 거느리고 자신들의 유목 목초지와 상업무역이란 경제적
이득을 찾아 정복전쟁을 떠났고 만주는 칭기즈칸의 마지막 왕자 웃치긴이
정복하여 한반도까지 지배한 것이다. 이런식으로 칭기즈칸은 실제로
전투다운 전투를 직접 한 적이 없고 몽골에서 유럽까지 몽골족의 유목
목초지와 상업무역을 위한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식의 몽골족의 팽창은 쿠빌라이에 의해 이어졌고 북중국을 통치한 경험이
있는 거란인과 금나라인들이 중원대륙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유목민족의
칸이 아닌 중원의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건의에 따라서 쿠빌라이는 원나라의
황제가 된 것이다.
이런 몽골족의 방식은 한족의 명나라때에도 이어졌고 만주족의 청나라때에도
이어졌다. 즉 남중국에서 한족이 강하게 일어나자 몽골족은 자신들의 고향인
몽골고원의 상도로 돌아가 북원정권을 세웠고 만주족이 후금정권에서 만몽한
연립정권의 청제국을 세우자 청제국의 결혼동맹 만몽한 연립정권의 일원이
되었다. 즉 몽골전쟁은 유럽의 서양인이 흔히 주장하듯 무지막지한 전쟁의
살육자가 아닌 합리적인 방식으로 팽창하여 정복하고 범세계적인 상업교역망인
역참제를 통해 세계경제를 번영시킴과 함께 티벳불교를 발전시켜 몽골 고유의
라마교를 만든 것이다.

저작권자:자유 대한민국 충청남도 서산시 동부전통시장 부산상회 김주형.
저는 신라의 후예로 상업제국 부산상회 방(邦)의 군주(君主)입니다.
저는 자유 민주주의 입헌주의 법치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폭군방벌론(맹자의 역성혁명론)에 의한 이 우주 법계 지구촌 세계
자유 대한민국 충청남도 서산시 동부전통시장 상업제국 부산상회
방(邦)의 신라계 군주(君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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