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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주원장시대 주원장의 농민관(農民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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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가모니 작성일2013.04.06 조회8,462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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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사민(四民) 가운데 농민이 가장 고달프다. 봄에는 닭이 울면 일어나서 소를 몰고 논에
나가 모를 심는다. 모를 심고 나면 피를 뽑고 거름 주며, 햇볕에 그을려 땀을 비오듯
흘리며 바쁘게 일하는 것이 사람꼴이 아니다. 간신히 수확하여 세량을 내면, 얼마
남는 것도 없다. 만일 수재, 가뭄, 메뚜기떼 피해라도 만나게 되면 온 집안이 가슴을
조려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러나 나라의 부세는 농민이 내는 것이고 요역으로 노동
하는 것도 농민이 하는 것이니 나라를 부강(富剛)하게 하려면 반드시 농민이 편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주원장 시대 봉건왕조 정권의 재정
수입은 주로 농촌에서 나오고 양식, 면화, 포백, 노동력을 모두 농민에게 기대므로
농업생산을 되살리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 정권(政權)은 지탱해 나갈 수 없었다.

댓글목록

석가모니님의 댓글

석가모니 작성일

주원장은 한족 남송지역의 황각사란 사찰의 승려로써 깨달음을 얻은 득도한 스님이시다. 주원장 스님께서는 고아들을 모아 스님공부를 시키신 후 환관조직과 금의위를 만들었고 주원장이 죽자 명나라의 군사지도자인 영락제와 스님인 영락제의 형님이 북경과 남경에서 남북으로 전쟁을 한 결과 군사지도자인 영락제는 황제가 되어 북진하여 몽골과 여진 그리고 조선을 방어하였고 형님이신 스님은 중원천하를 떠돌며 수많은 자비행을 펼치셨다.

석가모니님의 댓글

석가모니 작성일

주원장은 황각사의 승려로써 황각사에서 스님공부를 한 후 중원천하를 만행하였고 다시 황각사로 돌아와 부족한 공부를 한 후 득도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남송의 봉기군 황건적이 되어 남송지역을 수복한 후 오왕이 되어 원나라를 북벌 후 남송의 불교 명교(明敎)의 수장이자 중원의 황제가 되었다.

석가모니님의 댓글

석가모니 작성일

주원장은 불교적 깨달음의 도력(道力)으로 명제국을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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