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담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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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리아이 작성일2007.06.19 조회6,523회 댓글1건본문
지리산 동쪽 경남 산청 고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마을에 조그마한 절이 있었는데, 창건한지가 수백 년이 된 까닭으로 무너지기 직전에 이르렀으므로, 묘신이라는 그 절주지가 부처님의 위신이라도 빌어서 사찰을 중수코자 발원하고 어느 해 정월 초하룻날 부터 백일기도를 모시고 회향하게 되었습니다. 회향 날 밤에 어떤 노인이 와서 현몽하기를 “그대의 정성이 갸륵하기로 내가 이 절을 중수해 줄 시주를 구해줄 터이니, 내일 아침밥을 먹고 마을에 내려가서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을 복 시주하라“고 일러주고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이튿날 주지 묘신은 권선책을 가지고 동구 밖을 내려가니,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어떤 더벅머리 총각이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주지 묘신은 큰 시주를 만날 줄 알고 기대한 바였으나, 간밤 꿈의 현몽을 믿고 그 총각에게 인사를 한 후, “나는 저 윗절 주지 묘신입니다. 절을 중수코저 하오니 시주를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총각은 조금도 싫어하는 빛이 없이 흔쾌히 승낙하면서, “그러면 공사비는 얼마나 들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총각은 그러면서 ”내가 십년 동안 남의 집 머슴을 산 돈이 160냥이 있고, 또 우리 주인댁에서 받을 돈이 40냥이 되어 합하면 200냥은 되니, 받을 돈 40냥도 찾아다 놓을 터이니 한 십여 일 후에 가져다 중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주지는 바로 절로 올라와서 대중을 모아 공사를 하여, 그 돈200냥으로 한 달만에 절을 완전히 중수하고 성대히 낙성식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시주총각이 낙성식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간 뒤 3일만에 아무 곳도 다친 곳이 없는데,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불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복 받기 위하여 시주한 것이 복이 되기는커녕 앉은뱅이가 되었다“고 비난이 자자하였습니다. 이때에 주지는 그 시주한 총각에게 가서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하고서 절로 데리고 가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다시 삼일이 지나자마자, 이번엔 청년의 두 눈이 멀어서 장님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주지 묘신은 탄식하면서 ‘부처님도 무심하시고 야속하시군, 불쌍한 총각에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고, 급히 총각 방에 가보니 과연 그는 앉은뱅이 장님이 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주 도련님, 여기 주지 묘신이 왔습니다. 황송하고 미안하여 뭐라 말할 줄 모르겠습니다. 이래서야 누가 부처님을 믿사오며, 누가 절에 시주를 하겠습니까. 공연히 잘 계신 도련님에게 시주를 권한 소승의 죄는 죽어서 마땅합니다“하며 사과를 하니, 그 총각은 손으로 더듬으며 주지의 무릎
을 만지고는 “주지스님, 과히 걱정 마십시오. 누구를 원망하오리까. 모두가 내 운명입니다. 그렇지만 그 동안이라도 절에 와서 부처님 훈기속에서 염불소리, 쇠북소리를 듣고 보니 정말 극락에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된 내가 살면 며칠이나 살겠습니까. 내가 죽거든 부디 여러 대중이 모여 나를 위하여 후세 발원의 독경 염불이나 많이 해주세요“ 하고 신신부탁을 한지, 또 삼일이 지난 밤중에 큰 호랑이가 절에 와서 어흥 소리를 내면서 절을 한 바퀴 돌더니, 시주총각의 방으로 들어가서 앉은뱅이 장님 총각을 물고 뒷산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에 온 대중이 몽둥이, 낫, 도끼, 괭이 등을 들고 호랑이를 따라가며 소리를 질렀으나 발견하지 못하다가, 날이 밝아올 때 어느 큰 나무 밑에서 호랑이가 뜯어먹고 버린 총각의 뼈다귀만을 발견하니, 그것을 추려 가지고 절로 내려와서 주지 묘신의 지휘로 화장을 훌륭히 하고, 그의 인생이 너무나 참혹함을 동정해 칠재로 부터 49재를 성대히 치성하고, 그가 무상의 열반락을 얻도록 큰재를 올렸습니다.
재가 무사히 파한 뒤에 주지 묘신은 대중을 불러 공사를 하니, “여러 스님네는 친히 눈으로 보셨겠지만, 죽은 총각은 이 절 중수에 시주를 하고서도 이처럼 참혹하게 되었으니, 나는 죽어야 마땅하고 또한 이런 절은 둘 필요가 없으니, 여러분들은 오늘로 모두 짐을 싸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가시오. 나도 오늘로 떠나겠습니다“ 하고는, 대중이 모두 떠난 뒤, 주지 묘신은 미친 듯이 큰 도끼를 들고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 오른쪽 어깨를 찍어 버리고 큰방 채에 내려와 불을 지르고 도망쳤습니다.
잠시 후 마을 사람들이 절이 불타는 것을 보고 달려와 본 즉, 큰방 채는 다 타버리고 법당 한쪽까지 타는 것을 진화한 바, 그중에 한 사람이 부처님 뒤에 가서 살펴보니 부처님 어깨에 도끼가 박혀있으나 빠지질 아니하여 여러 사람들이 괴상히 생각하고 돌아갔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순식간에 25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에 박정재라는 사람이 그 고을 군수가 되어 부임한 지 삼일이 되는바, 삼일 동안을 매일 밤 꿈에 어떤 백발노인이 찾아와서 “여보게 도령, 자네는 전생 일을 잊었는가. 자네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머슴을 살다가 모아놓은 돈 200냥을 절을 중수하는데 시주한 인연으로, 자네는 이생에 지옥으로 갈 것을 면하고, 삼생을 두고 받을 바 앉은뱅이, 장님, 호식등 업보를 며칠 동안에 다 청산 받고 다시 인도에 태어나 지금 이 고을 군수까지 된 것이네. 지금 그 절이 폐사가 되었으니, 다시 중수하고 내세에 좋은 복을 받도록하게. 그때의 화주승인 그 절 주지도 아직 죽지 않고 금강산에 살고있네“ 하고 소상하게 일러 주었습니다.
박 군수는 그 이튿날 이방을 불러 “이 근처에 황폐하게 된 절이 있다지” 하고 물으니, 이방이 “예, 지금부터 25년 전에 산청고을에 있는 절이온데, 절 중수 때 시주한 총각이 않은뱅이, 장님으로 마침내는 호식까지 당하였습니다“ 라고 내력을 보고했습니다. 박 군수는 꿈과 똑같음이 신비하여 바로 관속들을 데리고 그 절에 가서, 칡넝쿨 밑에 파묻혀 있는 절을 소지하고, 부처님께 예배를 올린바, 어느 하인이 “부처님 오른쪽 어깨에 도끼가 박혀 있는데 안빠진다”고 군수에게 여쭈었습니다.
군수가 직접 가서 보고 그 도끼자루를 잡으니, 슬그머니 도끼가 빠지고 그 도끼 날에 글이 쓰여
진 종이가 묻어 나오는데, 무엇이라 써 있는가 하면 ‘전생에 죄가 많아 지옥에 떨어져 수만 겁을 고통받다가, 사람으로 태어나 일생에 않은뱅이가 되고 이생에 장님이 되고 삼생에는 호식하게 될 사람이, 이 절을 중수할 때 시주200냥을 하고서 불과 10일 동안에 그 무서운 죄보를 경하게 받고, 바로 우리나라에 나서 이 고을 군수가 되리라‘고 써 있었더랍니다.
그래서 박군수는 다시 금강산에 있는 주지 묘신대사를 청하여, 다시 그 절을 완전하게 중창하고 생전에 만석꾼의 거부장자로 벼슬도 고관대작까지 살고 사후에 극락왕생 하였다고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댓글목록
아라님의 댓글
아라 작성일재미도 있구 교훈도 주는 이야기 시리즈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