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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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리아이 작성일2007.07.10 조회6,224회 댓글1건본문
1971년 여름, 당시의 2군사령관 집안에는 매우 불행한 사건이 불어닥쳤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사령관의 외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감포 앞바다로 해수욕을 가서 다이빙을 하다가, 물 속의 뾰족한 바위 끝에 명치가 찔려 죽은 것이었다.
평소에 그지없이 말 잘 듣고 착했던 외아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사령관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방안에만 들어앉아 슬픈 나날을 삭이고 있었다.
이윽고 팔공산 동화사에서 아들의 49재를 지내던 날, 스님들의 독경과 염불을 들으며 아들의 명복을 빌던 사령관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패를 모신 영단을 향해 벽력같이 소리를 내 질렀다.
“이놈의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 이놈!- !.........”
감히 보통 사람으로는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있는대로 퍼붓고는 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법당을 뛰쳐나가 버렸다. 독경하던 스님과 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돌발적인 소동에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그날 밤 1시경, 2군사령부 헌병대장이 나를 데리러왔고, 나와 마주앉은 사령관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 한편을 들려 주었다.
“6.25 사변 당시 저는 30여단장을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늘 자신감에 넘쳐흘렀던 저는 백두산 꼭대기에 제일 먼저 태극기를 꽂기 위해 선두에 서서 부대원들을 지휘하며 북진에 북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전문이 날아왔습니다. ‘지휘관 회의가 있으니 급히 경무대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경무대를 향해 출발하면서, 평소 아끼고 신임하던 부관에게 거듭거듭 당부하였습니다.
‘지금 들리는 바 소문에 의하면 중공군 수십만 명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만일 내가 시간 내에 돌아오지 못하면 부관이 나 대신 백두산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아라.’
그런데 ‘가는날이 바로 장날’이라더니, 그날 저녁 중공군 30만명이 몰려와서 산을 둘러싸고 숨쉴 틈 없이 박격포를 쏘아대는 바람에 우리 부대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몰살당하였습니다. 뒤늦게 급보를 받고 달려가 보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있습니다. 저는 급히 부관을 찾았습니다.
‘부관은 어디에 있는가?’
얼마동안 찾다가 ‘어찌 그 와중에 부관인들 무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한 가닥 희망조차 포기한 채 허탈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당연히 죽었을 것으로 여겼던 부관이 쫒아 들어왔습니다.
“살아 있었구나. 어떻게 너는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
“죄송합니다. 실은 이웃 온천에 있었습니다.”
“온천? 누구와?”
“기생들과 함께..........”
“너같은 놈은 군사재판에 회부할 감도 되지 못한다. 내 손에 죽어라.”
어찌나 부아가 치미는지 그 자리에서 권총 세발을 쏘았고, 부관은 피를 쏟으며 나의 책상 앞에 꼬꾸라 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21년 전의 일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 낮 아들의 위패를 놓은 시식상 앞에 그 부관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였으므로 엉겁결에 일어나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그날 죽은 부관이 이번에 죽은 아들로 태어난 것이 틀림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부관이 죽은 날과 아들이 태어난 날짜를 따져보아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 야밤인데도 불구하고 스님을 모셔오게 한 것 입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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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작성일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