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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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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리아이 작성일2007.05.29 조회6,8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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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남병원의 이사장으로 있던 박영철 선생을 아들로 둔 김보운화라는 보살님이 있었습니다. 불교에 대한 믿음이 독실하였던 보운화 보살은 절에 가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올 때에도, 아들 곁에 있기보다는 절에 가기를 더 좋아하였습니다. 그것이 아들은 싫었습니다. 어머니를 부처님께 빼앗긴 듯 느껴졌습니다.
'엄마는 절 밖에 몰라. 나보다도 절이 더 좋은가봐.'
마침내 아들은 어머니를 미워하기에 이르렀고, 동시에 절을 싫어하고 불교를 싫어했습니다. 그러다가 6.25사변이 일어나자 아들 박영철은 군의관이 되어 7년을 복무했습니다.
그 7년동안 보운화보살은 옆구리를 방바닥에 댄 적이 없었습니다. 낮이건 밤이건 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을 염하였고, 극히 피곤하면 벽에 기댄 채 잠깐씩 눈을 붙였습니다. 그야말로 무섭도록 관음정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염불 정진한 덕은 그대로 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아들이 위급한 고비에 처할 때마다 어머니의 외침이 들려와 위기를 면하였던 것입니다.
하루는 박영철 군의관이 막사에서 쉬고 있는데, 어머니의 다급한 음성이 비몽사몽간에 들려왔습니다.
"영철아! 어서 막사에서 나와 달려가거라. 어서!"
박영철은 얼떨결에 일어나 막사 밖으로 달려나갔고, 간발의 차로 적의포탄이 막사 위에 떨어졌습니다. 또 하루는 구급차를 타고 가는데, 바로 옆에서 외치는 듯한 어머니의 큰 소리가 차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영철아, 네가 왜 그차를 타고 가느냐? 빨리 뛰어내려라. 빨리!"
박영철은 달리는 구급차의 문을 열고 뛰어내렸고, 차는 조금 더 나아가다가 지뢰를 밟아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들려왔던 어머니의 외침! 7년만에 제대를 한 박영철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면서 사죄하였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때, 어머니께서는 제 곁에 있는 것보다 절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미워하고 절도 불교도 부처님도 싫어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의관 생활 7년동안, 꼭 죽을 고비를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여러차례 무사히 넘겼습니다. 제가 이제껏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어머니의 지극한 정진력 덕분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미워하고 불교를 싫어했던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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